애플 키노트를 대충 봤다. SNS에서 이래저래 내용은 다 봤지만 디테일을 보고 싶었다. 여전히 손발이 오그라드는 애플 스타일의 발표는 여전하고, 커진 아이폰은 아무 감흥이 없지만, 애플페이는 주목할 만하다. 의외로 다들 애플와치만 이야기하고 애플페이 이야기가 없는 건 국내에 도입될 가능성이 낮아보여서일까? 하지만, 아이폰 앱스토어에 이미 카드가 등록된 이상, 애플페이가 상륙할 가능성도 낮진 않은 것 같다.
물론 애플페이에 들어간 기술 중에 새로운 것은 아무 것도 없으니 찌라시들은 혁신이 아니라고 하겠지만, 원래 애플의 혁신은 그런 것이다. 애플와치, 아이폰에서 애플다운 혁신이 별로 안 보였지만, 애플페이에는 애플다운 혁신이 들어 있다. 애플페이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페이팔과 스퀘어를 결합한 사용자 경험을 두 단계 높은 보안수준으로 제공하는 세계 최대의 카드 정보 보유 회사의 결제 서비스" 정도? 그야말로 결제 서비스의 궁극을 제시한 셈이다.
기술적으로는 어려울 게 없으니 경쟁사가 따라하기 쉬울 것 같지만, 의외로 애플페이에는 의외로 많은 장벽이 쳐져 있다. 우선, 아이폰 5S에서 지문 인식을 상당히 높은 퀄리티로 제공하는데 성공하면서 지문을 통한 인증을 활용할 수 있는 배경을 깔아두었다. 지문 인식을 제공하는 스마트폰은 여럿 있지만, 아이폰 5S처럼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진 않다. 불편하니까. 여기서 벌어진 격차는 꽤 좁히기 힘들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모두 커버하는 것도 그리 간단치 않다. 페이팔에는 디바이스가 없고, 아마존의 파이어폰이나 킨들 파이어는 아이폰/아이패드만큼 많이 팔리지 않았으며, 스퀘어는 온라인 비즈니스 접점이 없다. 아이튠즈 스토어에 등록된 카드가 페이팔이나 아마존을 넘어설 때 이미 예견되었던 것이 현실로 들이닥친 것이다.
마인드의 장벽도 있다. 구글, 아마존이나 페이팔 등은 개인정보 수집에 관심이 없을 수 없는 회사다. 하지만, 애플은 개인정보 수집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비즈니스를 하고 있으니, 쿨하게 보안을 위해 결제 정보를 다 버릴 수 있다. 그래서 어디서 뭘 사는지도 수집하지 않는다. 쿨하게 카드 번호도 넘기지 않고 원타임 넘버를 발급해서 결제한다. 소비자는 그동안 앱스토어와 지문인식에서 쌓은 신뢰의 바탕에 점수를 더해준다. 간단하지만 간단하지 않은 의사결정이다.
물론 삼성은 드디어 다시 따라할 거리가 하나 생겨서 삼성에겐 어쨋든 청신호다. 삼성도 이미 관련 기술들 다 보유하고 있고, 어설픈 UX로나마 선보인 바 있으니, 애플의 세련된 UX를 따라하는 것만으로도 지금보다는 한 발 나아갈 수 있고, 아마존과 제휴한다면 애플페이 못지 않은 파괴력을 낼 수도 있다.
나 같은 독립개발자들에게도 매우 좋은 신호다. 페이팔보다 조금 더 쉽고 안전한 결제 수단을 단순히 API만 연동하면 제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iOS 한정이지만, 어차피 독립개발자들은 iOS만 타겟팅하는 경우가 많으니 별 상관 없다.
그런데, 사실 더 중요한 것은 POS 시장을 뒤집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국내 POS 시장은 카드, VAN사, POS사, 프랜차이즈의 카르텔을 뚫고 들어가기가 몹시 어렵다. 인맥이 닿지 않으면 시장 진입조차 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고, 그래서 소셜커머스 연동 하나 제대로 하기 힘든 POS들이 여전히 팔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인데, 국내의 몇몇 스퀘어 카피캣들은 새로운 기술이 있으면 시장 진입이 가능하다는 것을 미약하나마 보여준 바 있다. 그러니, 애플페이를 비롯한 NFC 결제를 지원하는 소형 POS를 출시한다면 적어도 VAN과 POS 쪽은 제낄 수 있게 되므로 프랜차이즈의 입김이 세지 않은 상점들은 스퀘어 카피캣 도입하듯이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소셜커머스, 배달앱 등을 잘 연동시킨다면 POS 시장을 한 번 뒤집어볼 수 있을지 모른다. 물론, 국내 시장에서 애플페이의 위력은 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애플페이가 가져올 변화는 결국 NFC 결제의 활성화이기 때문에 POS의 변화는 피할 수 없다.
애플와치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자면, 애플와치의 성공은 애플와치의 성공에 달렸다. (응?) 그러니까, 나는 애플와치의 경쟁상대를 스위스 시계가 아니라 그냥 아이폰이라고 본다.(판매의 경쟁이 아니라 사용의 경쟁) 애플와치는 소수의 기능을 매우 쉽고 편리한 사용성으로 해결하는 애플식 접근법을 극단적으로 적용하기보다는, 스마트폰의 기능을 상당부분 대체할 수 있어야 하며, 일부 기능에서는 스마트폰보다 나아야 한다는 관점으로 봐야 한다. 이를테면 애플페이. 결제를 위해 아이폰을 꺼내들기보다, 손목을 갖다대는 게 더 쉬울 것이다. (물론 안해봤으니까 장담할 순 없지만. 손목 구부려야 하거나 하면 또 망...) 이외에도 홈오토메이션과 연동이라든지, 시계 및 알람(당연!), 음악재생 등은 폰을 꺼내는 것보다 편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 아이폰-아이패드의 관계를 애플와치-아이폰 6 플러스의 관계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애플의 접근법은 일리 있다. 의외로 기능을 막 집어넣을 것 같았던 갤럭시 기어는 소수의 기능 최적화에 주력한 느낌인데(물론 다양한 앱을 사용 가능하긴 하지만) 오히려 애플은 생각보다 복잡한 홈스크린 아이콘 구성을 통해 애플와치가 간단한 보조도구로 머무르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고, 실제로 보여준 앱들도 꽤 복잡한 동작이 가능했다. 아직 SDK를 접하지 않아서 모르겠으나, 어지간한 UI는 다 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 내가 쓰는 스마트폰 앱들도 절반 정도는 손목시계 사이즈의 스크린으로도 충분히 소화 가능하다.
그렇지만 이 정도로는 굳이 아이폰 말고 하나 더 구입할 정도는 안된다. 아이폰의 기능을 절반 정도 대신하면서, 추가로 그 동안 아이폰으로 하기는 좀 귀찮았던 것들을 많이 소화해야 애플와치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애플와치는 그 자체로 완벽하고 아름다웠던 1세대 아이폰과 달리 서드파티에 크게 의존할 것이고, 그럼 결국 성장곡선에 티핑포인트가 존재할 것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지금은 일단 많이 팔리는 게 제일 중요하다.
그래서 더더욱 애플의 접근법이 설득력 있다. 스마트 워치의 미래는 결국 스마트폰에 준할 정도로 스마트한 기기여야 하니까 그리로 갈 수 있는 길은 열어두지만, 일단은 많이 팔려야 하니까 아름답고 세련되게 만드는 것이다. 어차피 손목시계는 실용성을 상실한 제품이다. 그런 시장에 뛰어들어야 하는데 실용성을 내세워봤자 크게 어필할 수 없다. 그보다는 "예뻐서 샀는데 의외로 편하네?" 같은 반응을 이끌어내야 한다.
요약하면, 스마트워치는 스마트폰을 상당부분 대체할 수 있는 제품이어야 하지만, 일단 시장 진입을 하려면 그런 것보다 세련된 디자인이 중요하다는 것는 것이고, 애플와치 역시 그런 시나리오를 그리지 않았을까 싶다.
다만, 그런 관점에서 보면 애플와치의 디자인은 많이 아쉽다. 시계 시장이라는 게 어차피 남성을 타겟팅하는 시장이고, 애플와치의 초기 고객도 남성이 많을 가능성이 높은데, 시계 디자인이 고급시계 느낌보다는 캐주얼한 느낌이 강하다. 스큐어모피즘을 버린 것도 시계 화면에서는 다소 손해를 본 것이 아닐까 싶고. 물론 궁극적으로는 여성에게 더 많이 어필할 가능성이 높지만, 일단은 초기에는 누가 봐도 고급시계라는 느낌을 줄 만한 디자인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번 발표 역시 삼성에게 커다란 힌트를 준 셈이 되었다. 표준 시계줄 따위는 필요 없다는 걸 인지하고, 애니콜 때 하던 것처럼 금 처발라서 고급화한다면, 삼성도 뒤질 것 없다. 오션스 13에도 나온 애니콜 아닌가. 자, 얼른 따라하도록 하자. 땡큐 애플~
근데, 솔직히 시장에서 잘될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성공해야 성공하는 제품인데, 초기 시장 진입에 얼마나 성공할지 정말 기대되는 9월이 될 것 같다.
아이폰 6와 6 플러스에는 딱히 칭찬할 점이 없다. 뭐 이제라도 따라왔으니 다행이지. 아쉬운 게 있다면, 잡스라면 둘 중에 하나만 출시했을 거라는 점이다. 아이패드 에어가 있잖아. 아니면 노트처럼 펜이라도 달아주든가. 물론 삼성의 전략이라면 두 개 정도 사이즈 내놓는 게 별 거 아니고, 효율적인 전략이겠지만, 사람들이 애플에게 기대하는 건 그런 게 아니다. 무슨 사이즈가 최적인지 고객에게 물어보지 말고 그냥 니들이 결론내려서 가르쳐줘. 그게 애플이다.